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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1.04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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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작가 정이현이 새 단편집을 냈다.

'달콤한 나의 도시'가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의 삶과 사랑의 풍속을 다룬 '칙릿(chick-lit) 소설'류로 본다면, 이번에 여러 단편을 묶어 낸 '오늘의 거짓말'은 조금 더 성숙한 세대의 느끼한 모순과 은폐, 욕망과 파국을 다루고 있다.

이 단편들의 묘한 특징은 매우 정확하게 따라붙는 숫자들이다.
각 스토리의 서두에는 1972, 1979, 1985, 1995, 2004년이라는 정확한 연대가 나오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나이가 빠짐없이 드러난다. 뿐 만 아니라 그 해당연도의 자질구레한 기억들을 화보를 들여다보듯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작가의 의도에 좀 더 가깝게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작가 정이현은 1972년생이다. 아마도 비슷한 연배라면 '그땐 그랬어. 잊어버렸니?'하고 작가의 케케묵은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 것이다. 게다가 도시에서 태어나 평범한 학창생활과 사회생활을 겪은 사람이라면 소설속의 인물에 동화되기는 무척 쉬울 듯하다.

'오늘의 거짓말'의 인물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도시인들이며, 소설속의 테마 또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중산층의 유복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여성(어금니)이나, 별다른 이유없이 마흔에 가깝도록 결혼을 하지 못한 노처녀(위험한노처녀), 인터넷으로 거짓 구매후기를 남기는 비정규직 여직원(오늘의 거짓말),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해 배회하는 20대(삼풍백화점) 등등, 길에서나 이웃에서 쉽게 마주치는 갑남을녀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아슬아슬한 욕망의 비밀들을 감추고 있다.
평온한 생존의 안위에 대한 욕망, 권태와 모순 속에 감추어진 욕망,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괴이하고, 때론 터무니없이 순진무구한 욕망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런 도시인들의 욕망덩어리는 종종 파국의 위태로운 경계를 넘나들다가 은폐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엉뚱한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면서 도시생활이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면서 동시에 얼마나 환멸스러운 거짓투성이로 얽혀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평론가 박혜경은 이렇게 풀이한다. "정이현의 소설이 들려주는 것처럼, 소비사회가 창조한 거대한 욕망의 성채 안에 놓인 우리의 일상이 파국의 순간 위에 걸쳐진 아슬아슬한 널빤지 위의 삶과 다르지 않다면, 나, 혹은 당신은 파국으로부터 얼마나 안전한가?"


이 사회는 대개 비슷한 사람들이 익숙한 대중문화와 소비생활을 통해 습득한 획일적인 사고의 틀안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우리들의 감추고싶은 욕망의 속내가 얼마나 다양한지 하나하나 따져들어 우리가 숨기는 모순과 거짓, 허망한 오만과 일탈을 하나씩 꺼내 펼쳐놓는다.

또한 현대사회가 이런 단어들로 숨이 턱턱 막히는 삭막한 공기처럼 느껴지지만, 도시 대중들은 묵시적인 타협과 체념으로 이를 은폐한 채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얘기한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도시인들의 숨겨진 욕망들은 불가항력적인 파국으로, 때론 기이하고 혼돈스러운 결과로 이어지거나, 때론 치밀하게 봉합되어 지하 깊숙한 곳에 매몰된 형태로 은닉된다.

작가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면 좀 어때'라는 식의 자조적이고, 체념적인 우리의 모습들을 그녀의 소설집에서 시큰둥하게, 가끔은 냉정하고 거침없이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환멸스럽든 아니든, 또는 체념하든, 말든 관계없이 우리사회가 수용해갈 수 밖에 없는 숙명같은 일상임에 틀림없으며, 그나마 서로의 애정어린 시선과 웅숭깊은 위로가 파국에 따른 서로의 고통을 달랠 수 있지않겠냐는 작은 희망의 메시지도 드물게 던져주고 있다.
 

(2007. 11.3., Posted by Sweetp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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