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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10.20 하진의 '기다림'

하진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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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코끝이 시려오는 좋은 소설을 만났다.
추석전에 팀원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하면서 더불어 사두었던 것을 뒤늦게 읽은 것이다.

어찌보면 식상한 사랑얘기일수도 또, 한 개인과 가족의 평범한 인생, 가족사를 그저 담담히 그려내는 정도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내밀하게 담고있는 의미가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부모의 뜻에 따라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한 쿵 린. 가족을 고향에 두고 군의관으로 일하던 그는 같은 육군병원에서 일하는 세련된 현대여성 만나와 사랑에 빠지지만, 두 사람의 사랑을 이어가려면 린이 아내 수위와 이혼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린은 딸과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 대한 걱정으로 매년 만나와 약속한 이혼에 실패한 채 고향에서 돌아온다. 아내와 별거한 지 17년. 마침내 그녀의 동의없이 법률적으로 이혼이 가능한 시기가 되고, 린과 만나의 끝없는 기다림은 열매를 맺게된다.

책의 결말을 앞둔 부분에서 작가가 '기다림'이란 제목을 붙인 것은 바로 한 남자를 사랑하며, 결국 그와 결혼하기까지 십수년을 보내야했던 만나의 기다림 때문이라 풀이된다. 하지만 작가는 결말에 의미심장한 반전을 붙여두었다.

린과 결혼하여 행복한 날들을 보내던 만나는 쌍둥이 남자아이들을 힘겹게 출산하면서 그 후유증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쇠약해지고, 심리적으로도 날카로와진다. 아울러 린은 그렇게 기다리던 만나와의 결혼생활이 그저 지루한 일상에 다름아님을 깨닫고 힘겨워한다.

명절을 앞둔 어느날, 린이 이혼후 처음으로 아내와 딸이 사는 집을 방문하게 되고, 그들에게서 너무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면서 깊은 후회와 탄식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언제든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겠다는 딸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는 린의 모습으로 이 소설의 끝은 마무리된다. 작가가 얘기하려 했던 기다림은 바로 수위를 비롯한 가족의 애튿한 기다림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삶과 소중한 가정의 의미를 찾기위한 린의 기다림을 의미할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도 흔히 있음직한 소재다. 하지만 하진은 평범한 문장에 감정의 힘을 실어 독자들에게 아련한 심금을 울려준다.

작가는 물론, 소설의 배경이나, 인물들이 모두 문화혁명 시절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중국을 토대로 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는 하진은 영어로 이 소설을 저술하여 전미도서상, 펜 포크너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얼마전에 읽은 위화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문화혁명기의 중국사회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소설은 비교적 시대적 배경보다 인물들의 심리와 관계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아울러 위화가 풍자와 해학으로 인간사회를 조금은 과장되게 비꼬는 반면, 하진은 평이하고 담담하게 인물들의 감정과 일상을 그리고 있다.

사랑과 현실의 괴리로 힘겨워하는 친구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2007. 10. 20., Posted by Sweetp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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