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Aphorism'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09.04.11 청룡사 대웅전 기둥이 아름다운 까닭은?
  2. 2009.04.07 봄의 색깔
  3. 2009.04.03 부유(浮流)하는 삶 (1)
  4. 2009.03.31 포대화상의 에로티시즘
  5. 2009.03.29 드 메스테르식으로 관찰하기

청룡사 대웅전 기둥이 아름다운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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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투박함에서 아름다움이 베어나올 때가 있다.

안성 선운산 청룡사에는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한 대웅전 기둥과,
이 절간 앞마당에 귀가 깨어지고, 상륜부가 사라진 퇴락한 석탑이 있다.  

정교함도 세련됨도 없지만, 텁텁한 아름다움이다.

도가의 무위사상을 담은 건축인지, 무기교의 기교, 무작위의 미(美)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도편수의 게으름, 어린 석공의 미흡한 돌기술의 결과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휘어진 기둥으로 수백년동안 무거운 서까래와 기와들을 이고오지 않았는가.
수백년간 저 흠결많은 석탑에 수많은 사람들이 불심을 다스리지 않았던가.

청룡사의 당우기둥이나, 석탑의 아름다움은 곧 그 세월의 아름다움이다.
세월은 무상한 돌멩이, 나무둥치에도 아름다움을 아로새긴다.


짧은 인생. 

사람 인생보다 오랜 피조물은 그것이 무엇이든 아름답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내것이 아닌데 있기 때문이다.
 

2009. 4. 7., Posted by Sweetp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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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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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때를 상징하는 색깔이 있다.
여름은 초록이요, 가을은 갈색, 겨울은 흰색이다.

봄은 무슨 색일까?
매화나 벚꽃놀이에 취한 사람은 흰색이라 할 것이고,
유채나, 산수유, 개나리꽃에 눈이 아픈 사람들은 노랑이라 하고,
철쭉이나 진달래꽃 놀이에 빠진 사람은 분홍이라 하겠다.
붉디붉은 동백의 자태를 보면 빨강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고보니, 봄은 계절의 여왕답게 화려한 색깔로 몸치장하는 계절이다.


나는 설익은 봄이 좋다.
마치 화장을 하기전, 말끔히 씻은 얼굴로 거울앞에 앉은 여인처럼
갖가지 원색들의 향연을 앞두고 봄의 기운들이 대지를 녹이는 이맘때의 봄색이 좋다.

연노랑빛, 연겨자빛, 연홍빛이 군무를 추듯 겨우나무 위로 차분히 내려앉아 있다.
미세하고 흐릿하지만, 봄의 온기로 피워놓은 고운 빛깔이다.
오동나무, 버드나무, 굴피나무, 박달나무, 사스레나무, 단풍나무, 은사시나무, 굴참나무 등등,
수없이 많은 꽃과 나무들이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만들어놓은 진정한 봄의 색이다. 

곧, 나무잎사귀는 푸르름을 자랑할테고, 봄산은 알록달록한 색의 자태를 맘껏 뽐낼 터이다.
이에 질세라 봄을 맞는 사람들의 옷빛깔도 산과 들을 물들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겨울의 어두움과, 봄의 화려함 사이에 낀 이 짧고도 화사한 계절이 좋다.
지구온난화 탓인지 간절기가 사라진 요즘에는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아지랭이처럼 하늘거리는 짧은 봄기운이 아쉬워 꽃도 사람도 없는 봄산을 찾았다.
안성의 선운산 계곡에서도 봄의 전령들은 흙을 뒤집고, 단단한 나무위로 봄을 입히고 있었다. 


 
2009. 4. 5., Posted by Sweetp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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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浮流)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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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

나는 23층에서 산다.
층간 높이가 3미터 가량되니, 철근콘크리이트 구조물이 없다면 60미터 가량 공중에서 먼지처럼 떠다니는 셈이다.

매일 아침, 나는 23층에서 순식간에 지상으로 내려가 차를 몰고 회사로 간다.
사무실은 9층. 20미터즘 높이에서 대개 하루를 보내고, 다시 더 높은 공중부양을 위해 집으로 온다.
사실, 이동하는 시간마저도 고무타이어와 철판, 가죽의자로 된 구조물위에 앉아 약 30센티 높이로 떠서 이동하는 셈이다.
더구나 출퇴근으로 주로 다니는 길은 강위로 길게 이어진 강변로이니 달린다는 표현보다 날아간다는 것이 맞겠다.

결국 지상에 발을 붙이고 보내는 시간은 하루 한두시간이나 될까.

잠깐씩 떠있다는 스멀스멀한 느낌을 갖곤하지만, 견디기 힘든 수준은 아니다.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커튼만 내리면 잠을 이루는 데 그다지 불편함은 없고,
가끔 창아래 강가를 내려다볼 때만 고공생활의 현기증에 아랫턱 관절이 근질거리는 공포를 느낄 뿐이다.


악몽.

초등학교때까지 단층 한옥 가옥에서 살았다. 늘 내 발 밑에는 메마르거나 질퍽거리는 흙이 있었다.
운동장에서 놀다보면 신발은 흙과 먼지로 덮히기 일쑤고, 더러 맨발로 대문밖까지 뛰어나가기도 했다.

중학생이 될 무렵부터 나의 생활고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한걸음만 내디디면 곧바로 죽음의 문으로 이어지는 아찔한 높이. 그 현기증에 등골이 오싹해지곤 했다.

그래서인가. 꽤 클 때까지 늘 가위눌림의 소재는 추락이었다.
자유낙하로 떨어지다 땅에 닿을때즘 다리를 버둥거리며 악몽에서 깨어났고,
쥐가난 다리를 주무르면서도, 추락의 공포에 몸을 떨어야 했다.

죽음의 문이 사방으로 열려있는 곳에서 산 지도 30년이 다된다.
아슬아슬 외줄위에서 여유롭게 웃음짓는 바우덕이처럼 이제는 악몽도 없이 높이의 현기증에 익숙해지고 있다.
대신 떠다니는 생활 덕분에 체형이 새처럼 변한다. 다리는 가늘고, 배는 불룩한...
날개가 없지만 든든한 구조물들이 부양을 지지해주니, 나무위 둥지안의 까치새끼에 비견할 만하다.




부유하는 삶.
그것은 지상과 연결된 한가닥 줄에 의지해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가오리연과 다름아니다.

그런 공포로 나의 부유를 지각하는 일은 자욱히 내린 밤안개처럼 늘 불쾌하고 음습하다.
가끔 내 불안의 기저에 흠뻑 베어있는 잿빛 그림자의 원형이 아닐까도 의심해보며... 


나는 오늘도 23층에서 잠든다.
뭔지모를 모호한 불안감을 껴안은 채, 나와함께 떠있는 침대안에서...


2009. 4. 3., Posted by Sweetp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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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낭만시인 2009.04.06 10:33 address edit & del reply

    업무가 적응 안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view 가 좋기만 하네요 뭐..

포대화상의 에로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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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 절간에서 우연히 도자로 만든 포대화상을 만났다.

홍조띤 얼굴과 붉게 칠한 입술.
화려하다 못해 요란스러운 비단 가사.

붉은 혓바닥은 탐욕의 상징인가.

어랏. 도화(桃花)처럼 발갛게 부풀어오른 젖꼭지에 기가 막힌다.

포대화상은 애욕주의의 수호신? 에로스의 환생선사?

음탕하면 어떻고, 탐욕스러우면 어떠냐.
성 니콜라스(산타클로스)의 누드 시위에 견줄 에로티시즘의 해학미.

선승(禪僧)의 익살에 절집풍경이 정겹다. 

2009. 3. 31., Posted by Sweetpee



* 포대화상 (? ~ 916)

중국 후량의 선승. 명주 봉화현에서 태어났다. 체구가 비대하고,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며,
항상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지팡이를 짚고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시주를 구하거나 시대나 인간사의 길흉 또는 일기를 점쳤다 한다.
미륵보살의 화신이라 하여 존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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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메스테르식으로 관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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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Xavier de Maistre)의 글을 읽고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 하찮고 일상적인 경험 -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1년에 세 번 열매를 맺게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 - 그 숫자는 얼마나 많은지! - 은 운명의 솟구치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시대와 나라가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운 물줄기 속으로 밀려들어가면서도 늘 그위에 코르크처럼 까닥거리며 떠 있다.

 이런 것을 관찰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인류를 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아는 소수(극소수)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드 메스트르식으로 관찰하기.
 이것이 존 러스킨(John Ruskin)의 예술철학이요, 마르셀 프루스트(Marchael Froust)의 편집증적 채집작업이다.

 세상을 미니멀하게 관찰하면, 어느 곳이든 아름다움과 철학이 있다.
 마이크로 유니버스! 

2009. 3. 28., Posted by Sweetpee


* 1790년 봄. 스물일곱살의 프랑스인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Xavier de Maistre(1763 ~ 1852), 프랑스의 소설가, 수필가)는 
자신의 침실을 여행하고, 나중에 그것을 '나의 침실여행, Journey around My Bedroom'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드 메스트르는 자신의 경험에 만족하여 1798년에는 두번째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밤에 여행을 하여, 멀리 창문턱까지 
과감하게 나아갔다. 그 문학적 결과물은 '나의 침실 야간 탐험, Nocturnal Expedition around My Bedroom'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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