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의 '아름다운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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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근작이다.

얼마전 육체에 찾아온 병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스님이 삶은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 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 책 한 권이 지난 겨울내내 나를 괴롭혔다.

일부러 시간을 두고 띄엄띄엄 읽고, 다시 읽기를 거듭해 두어달만에 겨우 덮은 책인데, 그 기간만큼이나 스스로에게 스님의 질문들을 되묻곤하면서 자학하기를 반복했다.

오랜세월 인생을 관조해온 스님이, 또 최근에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 덤으로 사는 인생을 살면서 깨우치고 정리하신 말씀 하나하나가 차향기처럼 그윽하면서도 비수를 찌르는 깨우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언제 방문 앞에서 기다릴 지 모를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에게 노승은 죽음이란 결코 심장박동을 보여주는 오실로스코프의 그래프가 냅다 횡으로 달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않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고 있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보다도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있다. 가령 꽃이나 달을 보고도 반길 줄 모르는 무뎌진 감성, 저녁노을 앞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무감각, 넋을 잃고 텔레비전 앞에서 허물어져 가는 일상 등, 이런 현상이 곧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섬이다.



노스님의 말씀대로 죽음은 사건이 아니라 현상이다.

자아가 깨어있지 않다면 그것은 곧 죽은 것과 다름아니다. 내 넋을 온전하게 갖지않은 시간은 고스란히 죽음에 바친 시간일 뿐인 것이다. 


법정은 출가한 스님이지만, 종교적인 선사로서보다 자연주의와 인본주의를 기초로 한 철학가로서의 영기(靈氣)가 훨씬 짙게 느껴진다. 

스님은 한 때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하기도 했었지만, 본래의 수행승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오랜동안 홀로 살았다.

하지만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자 다시 불일암을 떠나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 문명의 도구조차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왔다. 이런 스님의 실천적 자연주의 철학은 흡사 월든호반에서 오두막을 짓고 한평생 기거한 데이비드 소로우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산 속 깊은 곳에서 홀로 기거하면서 스님은 오롯이 당신만의 시간을 즐겼으리라. 산새들과 채소밭과 꽃모종이 조우하지만, 그들 또한 남이아닌 당신 스스로였던 것이다. 물아일체, 물심일여의 상태다. 책을 대하는 스님의 자세 또한 이와 다름없다.


오두막 살림살이 중에서 가장 행복한 때를 들라면 읽고싶은 책을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쾌적한 상태에서 읽고 읽을 때, 즉 독서삼매에 몰입하고 있을 때 내 영혼은 투명할대로 투명해진다.

이때 문득 서권(書卷)의 기상이 나를 받쳐준다. 어떤 그림이나 글씨에서 그 작가의 기량을 엿보려면 이 '서권기와 문자의 향기'가 있느냐 없느냐로 가늠할 수 있다.



온나라 사람들이 스님의 이름을 다 알고, 스님의 가르침을 기다리지만, 정작 스님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기를 좋아하시지 않나보다. 아무리 가까운 지인이라 하더라도 얼음을 깨 차를 달이는 시간만큼이나 기다림의 여운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사람 만남이 일의 연장이고, 만나서 나누는 얘기가 속되고 속된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노승의 가르침이 매섭다.


습관적인 만남은 진정한 만남이 아니다.

그것은 시장 바닥에서 스치고 지나감이나 다를 바 없다. 좋은 만남에는 향기로운 여운이 감돌아야 한다. 그 향기로운 여운으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사람이 향기로운 여운을 지니려면 주어진 시간을 값없는 일에 낭비해서는 안된다. 탐구하는 노력을 기울여 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야 한다. 흙에 씨앗을 뿌려 채소를 가꾸듯 자신의 삶을 조심조심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만날 때마다 새로운 향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소박한 아름다움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스님의 차향기 같은 말씀을 듣고도 졸음을 이기지 못해 까무룩히 고개를 떨구는 어린애처럼 자꾸만 물욕에 사로잡힌다. 죽음이 아닌 깨어서 살아있으라는 스님의 얼음장같은 말씀에도 나는 눈앞의 어지러운 거짓됨에 넋을 꺼내놓기 일쑤다.

산속 은자로 살아야 꼭 수도의 길이겠는가. 

오늘 하루 깨어있다면, 깨어있고자 노력한다면 수도자의 구원과 별다를 것 없으리라. 스님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까?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는 스님에게도 행복은 배움과 노동, 그리고 휴식이 전부다.

내 삶을 이루는 소박한 행복 세 가지는 스승이자 벗인 책 몇 권, 나의 일손을 기다리는 채소밭, 그리고 오두막 옆 개울물 길어다 마시는 차 한 잔이다.

 

2009. 2. 3., Posted by Sweetpee.


덧붙임.

스님이 소개한 시조 한 편이 참으로 그윽해서 덧붙인다.

물 아래 그림자 지니
다리 위에 중이 간다
저 중아 게 있거라
너 가는 데 물어보자
막대로 흰구름 가리키며
돌아 아니 보고 가노메라

송강 정철의 시조인데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에 그림자가 어리어 다리 위를 쳐다보니 한 스님이 지나가고 있다.
대사, 잠깐 물어보세. 어디로 가는 길인가?
스님은 지팡이를 들어 흰 구름을 가리키며 아무 대꾸도 없이 가던 길을 시적시적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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