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 라이프 (Streaming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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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태생적으로 게으르다.

맥박 쿵쿵거리는 속보보다 느릿느릿 걷기를 좋아한다. 걷다가 멈춰서서 주변경치도 휘 둘러보고, 발아래 들리는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듣기를 좋아한다. 여러 사람과 함께 산행에 오를때면 늘 한참 뒤에서 휘적휘적 오르기 때문에 일행에 짐이 되기 일쑤다.


행동만 굼뜬게 아니다.

빠른 속도로 펼쳐지는 모든 것들에 취약하다. 영화를 볼 때도 빠르게 전개되는 플롯을 따라가기 보다 주변 배경이나, 배우들의 말투, 몸짓에 주의를 기울이다보니 전후 상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액션이나 SF 등 템포가 빠르고, 어려운 용어가 나오는 영화를 보고난 후엔 항상 게운치 않은 찜찜함이 있다. 


역시 속도가 느린 영화가 좋다.

'파이란'이나, '멋진하루'와 같은 영화는 몇 번씩 봐도 질리지 않는다. 오히려 볼 때마다 전엔 몰랐던 신선함이 묻어난다. 외국영화로는 '원스'나 '흐르는 강물처럼', '브루크벡 마운틴' 등의 것들이다.  


나에게 책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느린 책들이고, 하나는 빠른 책들이다. 이 구분법은 책읽는 속도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의 활자들이 가서 담기는 내 머리속 장소에 따른 것이다.

느린 책들은 주로 나의 감성세포를 찾아간다. 산문이나, 소설, 여행서, 문화예술, 철학 등의 책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반대로 빠른 책들은 다분히 먹고사는 생존법을 익히기 위한 것들이다. 경제,경영서, 자기계발, 사회나 인구통계, 미래학과 관련된 책들이다.

법정스님은 책을 안읽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더러운 책을 보는 것이라 했다. 스님이 말한 더러운 책이란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주로 빠르게 인생을 살기위해 읽는 책들일 것이다. 경쟁에서 남을 이기고, 더 빨리 더 많은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실용서들이다. 

하지만, 이런 빠른 책들이 반드시 위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느린 책들이 위험할 때도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속삭이는 책들을 보고나면 쳇바퀴도는 일상에 의욕을 상실하기 쉽다. 오늘 하루가 공기빠진 풍선처럼 늘어져 무의미해보이고, 상상속의 꿈과 쫒기는 현실 사이의 괴리에 때론 우울해지기도 한다.

평온하고, 감미로운 '뉴에이지'가 자살로 이끄는 가장 위험한 음악 쟝르라는 주장처럼, 어쩌면 '느림'을 강조하는 책들이 섭생에 목을 메는 우리들에게 더 위험할 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때문일까. 얼마전 밤새워 일하는 것을 밥먹듯 하는 직원이 파올로 코헬료의 산문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는 것을 보고 '위험한 책을 보는구나'라고 농삼아 말하기도 했다. 회사 직원들에게 선물하는 책들은 대부분 주마가편용 실용서들이다.


결코 어느 한 편에 느긋하게 서있기를 두려워하는 심약한 나에게 느림과 빠름의 양립은 늘 갈등의 굴레로 나를 빠뜨린다. 가끔씩은 표리부동의 자기기만이란 자책감에 빠뜨리기도 한다. 

참명제와 거짓명제, 천사와 악마처럼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면 온순한 모범생처럼 옳바른 길을 찾아가겠지. 그러나, 빠름과 느림 사이에는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좀체 알 도리가 없다. 
 

돌이켜보면 사회에 출사표를 던진 후 지금까지 나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빠르게 달려왔다. 

언제나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고, 틈이나면 주로 생존을 위한 지식들을 탐닉했다. 책임질 일은 점점 많아졌지만, 반대로 조직생활의 긴장과 모험을 즐기기도 했다. 때론 속도를 이기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몸과 마음으로 경고신호를 보내기도 하면서... 


지난 연말, 나는 '느림의 철학'에 몰입해 지냈다. 

'느림의 철학'은 역설적으로 남은 인생에 대한 조급함과 절박감에서 출발한다.
회상해보면 초등학교때 겨울방학의 시작과 크리스마스 사이는 너무나 길었다. 정성껏 성탄카드를 만들고, 크리스마스 트리장식을 준비하면서 보내던 하루하루는 왜 그리 더디게 가던지... 어린 나이에도 남은 인생이 지루해보일 정도로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 '느림의 철학'은 크게 뒤진 채 전반전을 마치고, 이제 막 남은 후반전을 위해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운동선수들의 조급함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하루가, 계절이 가는 것이 아쉽다. 아쉬운만큼 조급해진다. 


느린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한다.

그동안 빨리달리기에 익숙해진 관성에서 벗어나야 하고, 미래를 바라보던 원시에서 근시로 시력을 바꿔야 한다. 느림의 철학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꽉 짜여진 조직생활에서 벗어나야 하고, 어쩌면 대오에서 이탈한 패자로 오해받는 것도 참아내야 할 지 모른다.


밤늦은 시간의 느긋함은 지금이라도 서둘러 '느림의 세계'로 귀환할 것을 유혹한다. 

책과 음악, 영화는 느림의 세계에서 보내는 전령이다. 그 여유로움과 미지의 세계에 몽롱하게 취해 헤어나지 못한채 잠이 들때도 많다.

그러나 창안으로 스며드는 희붐한 햇살에 눈을 뜨면 마취에서 깨듯 소소로운 일상들이 줄지어 찾아온다.

이를 닦으면서 오늘 할 일들을 정리하고, 오늘 해야할 말들을 추스린다. 서둘러 차에 오르고, 다른 차에 밀려가면서, 또 라디오 뉴스를 들으면서 오늘 해야할 말들을 추스린다. 회의에 들어가고, 다른 이들의 말을 들으면서 또 해야할 말들을 추스린다. 해야할 말들...해야할 말들... 저녁에도 술을 마시며 동료들에게 해야할 말을 한다. 

해야할 말과, 하지않아도 될 말까지 다하고 난 후,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음악을 듣거나, 책을 펼쳐들고 나서야 비로소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게된다. "까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라.....'


많은 것들을 모았다. 

결코 영원히 가질 수 없는 것들을 집안에, 길거리에, 일터에 모았다.
가능한 많이, 빠르게 담기 위해 숨가쁜 날들을 살아왔다. 이제 더 담으려면 내가 가진 것들을 비워야 한다. 비울 자신이 없다면, 삶을 대하는 태도를 개조해야 한다. 하루하루 일상이 담겨지지 않고 물 흐르듯 지나가도록... 스트리밍 라이프로, 자유로운 노마드로 살기위해 지금까지 저장해온 일상의 껍질을 벗어버려야 한다. 

하지만, 천재지변이 있지않는 한, 나는 내일 아침 눈을 뜨면 해야 할 말들부터 추스릴 것이다.
발치의 고통이 두려워 이 아픈 것을 참듯, 탈피의 고통이 두려워서 또다시 무거운 껍데기를 걸치고 익숙한 길로 나설 것이다. 허깨비처럼...좀비처럼...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껍데기는 가라. 제발 좀 가라. 주문을 외운다.



2009. 1. 20., Posted by Sweetpee.


 
 
Trackback 0 And Comment 2
  1. 울프팩 2009.01.25 08:0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천천히 많은 생각을 하셨나보네요. 저도 '개밥바라기별' '열일곱살의 털'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예전과 지금의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무튼 좋은 답을 찾기 바랍니다. 케익집 구상도 할 겸 2월 첫 째 주쯤 뵙죠. 제가 강남 넘어갈 때 연락드리겠습니다.^^ 연휴 잘 보내시구요.

  2. 낭만시인 2009.01.28 21:0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문득, 가진게 별 게 아닐수록 버리기 아까워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아직도 먼 게지요.. 대단하게 가진것도 없으면서 버리는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