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바리데기'

Posted 2007/08/12 19:58 by sweetpee




90년대들어 본격적으로 이념과 사상의 시대가 지나가면서 실천문학은 대중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디지털과 영상매체의 영향으로 문학적 상상력은 크게 줄어들고, 그 중에서도 낡은 구들돌처럼 실천문학이 설 자리는 급격히 좁아졌다.

그동안 일제강점과 광복, 4.3 제주, 한국전쟁과 분단, 유신과 군부독재, 5.18 광주 등 무궁무진한 실천문학의 소재들도 마치 우려낼대로 우려낸 탕재의 찌꺼기마냥 시들해지고, 그동안 다양한 각도에서의 작품들로 생생히 역사를 기록해오던 실천문학 작가들은 사랑채로 물러앉은 노인네마냥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묵묵히 건네보기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문학계의 거두인 황석영이 과연 어떤 소재로 침묵을 깨고나올지 적쟎이 궁금했다.

그가 4년만에 보여준 신작 '바리데기'는 소재의 궁핍이라는 내부적 고민과 세계화로의 새로운  돌파구를 함께 보여준 작품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내용면에서 북한사회의 해체와, 국제적 양극화라는 2가지를 딱 절반씩 나누어 다루고 있다. 다시말해, 주인공인 '바리'가 굶주림과 가족해체의 공포에서 벗어나 고향을 탈출하기까지의 전반부와, 영국에서 3세계 인민들과의 험난한 삶의 여정을 다룬 후반부로 나누어진다.

이 둘의 경계는 바리가 중국에서 밀항 화물선을 타고 영국으로 넘어가는 부분을 경계로 뚜렷이 양분된다.

북한사회의 해체는 문학계가 책임있게 다루어야 할 주제이지만, 현실적인 접근의 어려움 등으로 그동안 외면받아온 감이 없지않다. 작가 황석영은 이 책에서 90년대 수백만명이 기아와 영양실조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사회의 단면을 리얼하고도, 냉정하게 다루고있다.
 
아마도, 그가 백두산과 만주일대를 골골샅샅이 뒤지면서 발로 담은 취재가 그 어떤 사실적 르뽀보다 사실적이고 입체적인 글이 될 수 있었던 재료가 됐으리라.

그런데 작가는 왜 북한의 사회해체 현상을 국제적 양극화 문제로 확대해서 다루었을까?
그것은 작가가 북한사회의 고립과 이로인한 참담한 고난을 미국 등 강대국 주도로 심화되는 새로운 양극화의 한 부분으로 해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을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3세계 난민들이 전쟁과 기아, 가난과 폭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진국으로의 밀입국을 시도하지만, 이것은 갈등과 고난의 또다른 단면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신천지로의 월경은 인종, 종교, 계층차별의 새로운 갈등과 사회 양극화의 종양이 되고, 이는 곧 영국에서의 버스폭탄 테러나, 프랑스의 이민자 폭동 등 극단적인 형태로 분출된다.

오히려 이것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이란과 북한의 핵개발 논쟁, 9.11을 비롯한 각종 테러 등 국제적 양극화의 국지적 현상으로 봐야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사회의 고난은 국제적 양극화라는 논제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으며, 글로벌 환경하에서의 새로운 사회갈등의 단면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작가 황석영은 주인공 바리의 어린 시절과 그녀가 북한을 탈출해 중국, 영국으로 밀항하고, 런던의 좁은골목에서의 질곡의 삶을 르뽀형태로 추적하며, 세계화시대의 음지와 그곳에서 신음하는 3세계 인민들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제가 넓고 무겁다보니, 플롯이 달려가는 속도가 거침없다.

그러나 그 속에 리얼리티와 꿈, 샤먼적 환상이 어우러져 흘러가는 유려한 문체와 토속적인 함경도 방언이 주는 재미가 성마른 독자의 눈길을 웅숭깊게 옭아매고 있다.

소설이 때로는 영상매체보다 훨씬 화려한 색채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역시 황석영이다.

 
(2007.  8. 12, Posted by Sweetp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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